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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30 30x50inch
자연 속에 은닉된 신비스러운 미시적 풍경
신항섭(미술평론가)
사진가는 렌즈를 통해 세상과 마주한다. 렌즈는 인간의 눈보다 더 다양한 시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광학적인 기술에 의해 조정되는 렌즈의 초점거리에 따라 시각보다 더 넓은 세상이나 더 좁은 세상과 만날 수도 있다. 특히 눈으로 잘 인지되지 않는 아주 먼 거리의 피사체 또는 극미한 세계까지도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는 카메라와 렌즈가 가지고 있는 마법이다. 시지각 너머에 실재하는 세상 풍경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그걸 카메라와 렌즈가 우리 곁으로 불러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또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지 일깨워준다.
김성은의 사진이 그렇다. 그의 사진은 풍경사진의 범주에 들어간다. 나무와 숲이 있는 전형적인 풍경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나무들이 일렬로 도열하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거대한 고목 한 그루, 바람이 부는 날, 눈이 내리는 겨울 등의 자연풍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풍경이 분명한데도 왠지 낯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상적인 시선으로는 만나기 어려운 풍경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어디서 본 듯싶지만, 장소를 특정할 수 없는 풍경이기에 그렇다.
그가 보여주는 풍경은 의사화된 풍경의 이미지일 따름이다. 다시 말해 자연풍경으로서의 요소를 갖추고 있으나 실제로는 현실 너머의 풍경적인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자세히 보면 실재하는 풍경, 즉 실상이라기보다는 조형적인 풍경이라고 해야 마땅한 이미지이다. 실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림에 근사하다는 말이다. 회화에 훨씬 더 가까운 이런 풍경적인 이미지는 실상이 아닌 듯싶은데 실제로는 실상이어서, 그 출처를 알고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바다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은 수평선과 파도가 존재하는, 끝없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의 세상이라는데 있다. 여기에 풍경적인 요소를 덧붙인다면 어선과 등대 정도이다. 이는 바다에 대한 피상적인 이미지이고 또 인상이다. 그런 바다는 의외로 놀라운 실상 또는 그런 현상을 내재하고 있다. 엄연히 실재하는 사실인데도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아 그 실상을 알고 있지 못한 세상 풍경이 펼쳐진다. 이처럼 일상적인 시선에 잘 띄지 않는 숨겨진 풍경이 그의 사진이 추구하는 자연풍경에 근사한 이미지이다.
바다는 하루에 두 차례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채집한 이미지가 그의 작업이 추구하는 요체이다. 바닷물이 들락거리는 모래톱이나 갯벌을 유심히 살펴보면 물길이 빠져나가는 곳에 아주 작은 물길의 흔적인 남아 있다. 그 흔적이 그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나무와 숲이 있는 자연풍경과 흡사하다. 자연의 힘이 만들어낸 오묘하고 신비스러운 현상이다. 여기에 마크로 렌즈를 들이대고 풍경적인 이미지를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는 심미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백사장 또는 갯벌에 길게 이어지는 물길의 흔적에서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탐색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 자신의 명민한 미적 감수성이 작동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속에서 다양한 풍경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여기에다 색채를 가미해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완성한다. 그의 사진은 포토샵을 거치지만 그 원본, 즉 자연에서 취재한 이미지는 가공이거나 허구가 아니다. 자연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진정 아름답고 신비스러우며 환상적인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어쩌면 그의 사진은 사진과 회화의 경계에 자리한다고도 할 수 있다. 사진으로서의 리얼리티와 회화적인 조형미를 조합한 독특한 현실상의 표현이기에 그렇다.
“흙이 그린 그림”이라는 큰 타이틀을 중심으로 ‘흙-황금색 시리즈’ ‘흙-갈색 시리즈’ ‘흙-푸른색 시리즈’ ‘흙-다양한 색 시리즈’의 네 가지로 분류되는데, 색채이미지에 따라 작품의 정서가 다르게 느껴진다. 색깔이 달라짐으로써 시각적인 이미지는 물론 정서 그리고 내용이 또한 다르다. 이는 그의 사진이 가지고 있는 조형의 묘미이다. 작품 이미지에 따라 어떤 정서 및 내용을 담을 것인지가 결정된다는 얘기다. 이러한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의 하나는 서정성이다. 여러 가지 물상이 혼재하는 자연풍경과 달리 나무와 숲이라는, 함축적인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 속에 깃들인 서정미를 통해 마음과 감정의 순화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신비스러운 이미지와 더불어 아름답고 서정적인 이미지를 찾아내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려는데 있다. 우리의 일상적인 시선에 닿지 않는 곳에 은닉된 오묘한 자연의 실상을 찾아내 미시적인 세계에 경이로운 세상 풍경, 즉 자연미 안의 또 다른 자연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히려는 것이다. 이는 자연사상 및 자연철학에 기조한, 시각예술의 가치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전해주는지 함께 되새겨보자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