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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日蝕 solar eclipse)과 고인돌 1 40×31cm 아크릴화(Acrylic on Canvas)
주은화의 작품세계
음양오행 및 생철학에 기반을 둔 조형세계
신항섭 (미술평론가)
그림은 시각예술이지만 형식과 내용이 등가를 이루는 것이 이상적이다. 다시 말해 독자적인 형식미와 그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보다 더 이상적인 것은 그림은 문학성이 있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철학이 담겨야 한다. 그림이 눈으로 이해하는 시각적인 예술일지언정 삶에 대한 성찰이 반영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주은화의 작업은 동양사상인 음양오행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세상 만물은 밝음과 어둠, 하늘과 땅, 낮과 밤, 남과 여, 봄, 여름과 가을. 겨울, 산과 바다 등 양극적인 상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음양의 이치, 즉 이와 기로 나뉘는 우주의 존재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음양오행이고 주역(周易)의 팔괘(八卦)라고 할 수 있다. 동양사상의 정점은 이처럼 이(理)와 기(氣)의 작용에 따라 우주 만물이 형성되었음을 설파하는 데 있다.
그래서일까. 그림이라는 창작활동을 하다 보면 한 번쯤은 동양적인 사상을 작품에 반영할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그는 바로 이와 같은 시각으로 그림과 마주하고 그 의문을 음양오행 및 주역을 대입시켜 풀어내는 방법을 강구했다. 그의 그림은 동양사상 및 철학이라는 뼈대 위에 살을 입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 가운데 역(易) < 겸괘 >라는 명제를 가진 일련의 태극 문양 및 주역의 괘 문양으로 구성되는 작업을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형상이 드러나는 구상작업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역(易) < 겸괘 >연작은 음양을 상징하는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역(易) 괘(卦)를 배치하여 동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방식을 취한다. 우주는 물론 자연의 모든 물상과 현상은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음양(陰陽)의 태극(太極) 문양은 이와 기의 조합이고 괘는 이와 기가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세상의 변화를 상징한다. 이를 음양오행의 원리라고 할 때 이에 기반을 둔 세상은 부단히 움직이며 변화하게 된다. 따라서 태극 문양으로 이루어진 구성작업을 비롯하여 괘(卦)로 구성하는 작업 등 모두 다이내믹한 시각적인 이미지로 표현된다. 바람이 부는 듯싶은 동적인 이미지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음양에서 발단한 에너지의 현상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 자연-꽃 >이라는 연작의 경우 다양한 꽃의 형태만을 보여주는 간결한 구성과 함께 산과 강, 그리고 바다 풍경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아름다운 사계절의 자연풍경을 다양한 시각 및 기법으로 풀어나간다. 자연미와 함께 강렬한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생동감이 충만하다.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자연의 본질인 생명력에 대한 조형적인 해석이다. 리듬이 실린 터치와 동적인 선의 이미지 그리고 원색적인 색채가 지어내는 시각적인 인상은 모두 생동감과 연결된다.
그는 눈에 보이는 사실에 머물지 않고 아름다운 자연 이면에 존재하는 생명의 기운을 드러내고자 한다. 따라서 실제를 의식하지 않고 빠르고 힘차며 속도감이 느껴지는 필치를 통해 생명의 기운을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리드미컬한 붓의 움직임으로 자연에 흐르는 생명의 파동을 생생하게 보여주려는 것인지 모른다.
세부적인 수식을 배제한 채 단지 꽃송이만을 배치하는 간결한 구성적인 작품의 경우, 이미지가 명료하다. 꽃 하나하나에 자존을 부여하는 듯싶은 선명한 이미지는 소박파적인 순수함과 명료한 시각적인 인상을 준다. 꽃이 지닌 형태미를 도상에 가까운 간명한 이미지로 나열함으로써 시각적인 압박감을 준다. 이는 보이는 대로 본다는 철학적인 접근방식의 소산이다. 가공되지 않는 꽃의 순수성을 드러내려는 심사이다.
일식, 고인돌, 거북바위, 그리고 심안(心眼)을 통해 세상을 내다보는 신비주의적인 심안석 등 일련의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작업은 자연철학 또는 생철학과 관련되어 있다. 일식이라는 놀라운 우주 현상과 별이나 달은 인간 삶의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가장 가까운 우주의 모습인 별과 달 그리고 태양의 존재와 밀접한 인간 삶의 이치를 고인돌과 거북바위에 대입시킨다. 눈이나 비, 바람과 같은 자연현상에도 의연하고 초연한 이들의 존재방식은 삶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우주와 나, 태양계와 나 그리고 자연과 나의 관계성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의 열쇠가 된다. 이는 계절의 순환이나 생명의 고리로 이어지는 인간 삶의 연속성과 영원성에 대한 희구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이 그는 그림의 소재가 무엇이든지 삶에 대한 뚜렷한 철학적인 인식을 통해 그 실체로서의 형태미와 기운을 시각화하고자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관련해 철학적인 인식이야말로 그림의 조형미, 그리고 삶의 진정성의 실체를 살피는데 기본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