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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론 Critics

 

조도중의 작품 세계

- 뉴욕 첼시의 Agora gallery 카달로그에서 발췌

조도중은 흙을 회화의 재료로 사용하는 기법의 선구자로서 "soil art"로 알려진 스타일의 세계적인 리더가 되었습니다. 그는 영감의 순간에서 프로세스를 만들고 붉은 토양을 실험하고 조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4년 동안 그는 자신의 기술을 개발하고 재료를 확장하여 '토양 예술'을 위한 독특한 매체, 색상 및 적용 프로세스를 만들었습니다. 토양의 미네랄은 그의 작품에 고유한 색상을 부여하고 조명을 받으면 작품이 반짝거리게 하여 절묘한 효과와 인상을 줍니다.
조도중은 중앙대학교 서양화과에서 미술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는 대학 1학년 때인 1967년 제16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상한 이후 미술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는 당시에 한국 역사상 최연소 국전입상 경력의 화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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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흙에서 솟구치는 힘의 긴장과 역동성

호병탁(시인·문학평론가)

 1. ‘본다는 것’은 하나의 ‘시각적 판단’이다. 그런데 이런 판단은 본다는 것이 행해진 이후에 이차적으로 발생하는 지적 작용이 아니다. ‘퇴적층에 박혀있는 돌무더기’ 같기도 하고 ‘오래된 소나무 껍데기’ 같기도 하고 ‘굴 껍질더미’ 같기도 한 조도중의 작품을 인지한다는 것은 ‘본다는 것’과 동시에 그것을 단박에 느끼게 되는 직접적 판단요소가 되는 것이다. 또한 ‘본다는 것’이란 정신적 능력은 추상적 개념에 의해서도, 인식되는 정서에 의해서도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시각적 판단을 ‘유도하는 도구’가 아니라 ‘결과적 귀결’일 뿐이다. 기울어진 각도의 돌무더기를 볼 때 어떤 사람은 쾌적함을, 어떤 사람은 불안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심적 정서는 그 돌들의 위치와 각도를 감지하는 순간 발생하는 결과일 뿐이다. 물론 나는 이런 순간의 인지적 판단에 대해 논리적 설명을 가해야 함으로 이 글에서 말이 길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떤 것을 본다는 것은 또한 우선 전체의 장소에 그 ‘물체의 위치’를 지정하는 것이다. 물체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다. 밝은 것도 있고 어두운 것도 있다. 유일하고 고립적으로 지각되는 물체는 없다. 본다는 것은 사각의 캔버스라는 공간상에서 서로 다른 크기와 색과 밝기를 가진 물체의 위치를 인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조도중의 돌무더기는 단순히 어떤 장소를 차지하고 있은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장소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하고 중심으로 이끌리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공간의 한 자리에 묶여 실제적 ‘운동’이 불가함에도 불구하고 주변과 관계하며 척력과 인력의 내적 ‘긴장’, 즉 움직임의 역동성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긴장 역시 지적 작용이 부여하는 이차적 산물이 아니라 크기, 위치, 밝기 등과 같은 지각 자체의 한 부분이며 그 내용이 된다. 그럼에도 끌어당기는, 혹은 밀어내는 ‘힘’에 의해 발생하는 긴장을 지각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는 밧줄은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우리는 밧줄 위에 꿈틀대는 ‘힘의 긴장’을 확실히 느끼게 된다.
나는 이글 전반에 걸쳐 조도중의 작품에 나타나는 그런 힘의 긴장과 그에 따른 운동을 주시하고자 한다. 물론 공간 안에서의 형상, 크기, 방향, 빛과 색채 등이 언급되겠지만 이는 결국 그림의 생명인 긴장과 운동을 제대로 보고 느끼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다는 것은 ‘움직이게 하는 힘’을 느낀다는 것과 진배없다.


 2 2000년 1월, 새 천년 벽두에 조도중은 찻길도 없는 산골 외딴집에 처박힌다. 그곳에서 나무와 풀과 꽃들, 그리고 그것들을 보듬어 안은 흙과 함께 원시인처럼 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의 그림은 큰 전환점을 보이게 된다. 쌀 한 말이면 한 달 먹고 사는 그의 주위에는 스스로 충만한 대자연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흙을 캐서 물감 대신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들을 화폭에 담았다. 조도중이 ‘흙의 화가’라고 불리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는 원래 구상으로 유명한 화가였다. 60-70년대 국전을 포함한 수많은 구상전에서 입상하였고 75-85년에는 ‘구상전’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80년대 내내 대학에서 강의하였다. 그의 이력을 보면 89년까지의 겸임교수 생활로 일단 마감이 된다. 그리고 2000년, 고창 산골에서 흙을 소재로 다시 작업을 시작할 때까지 90년대의 10년간은 완전한 공백이다. 전시회 한 번 없다.
그는 2003년 롯데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자신이 사는 산골에서 퍼 올린 흙으로 그린 그림들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조도중 땅꽃전’이라 명명된 이 작품전은 그의 예술세계에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선포한 것에 다름이 아니다. 나는 이때부터의 조도중 예술작업을 ‘흙그림 시대’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 개인전에 등장한 작품군은 “검은 흙에서 핀 꽃이 검은 꽃이 아닌 것”처럼 “그 오묘한 자연의 경이를 통해 흙의 색깔이 아니라 색깔 속에 용해된 흙의 내재미를 찾아냈다”는 상찬을 받았다. 40여년의 ‘유화시대’는 막을 내리고 새로운 ‘흙그림 시대’가 성공적으로 그 막을 연 것이다.
2012년 서울 인사아트에서 ‘땅의 생명전’이 열렸다. ‘땅꽃전’ 이후 1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는 산 속에 처박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화폭에 담긴 빛깔은 더욱 다양해졌다. 흙에 내재한 석영, 운모, 장석, 방해석 등은 철분과 함께 산화하며 화가에게 다채로운 색상을 선물했기 때문이다. 7가지 색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갖가지 흙의 조합을 통해 이제 색은 320가지로 늘어났다. 화가이기 전에 그는 농사꾼처럼 계속 흙을 주물러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림에 담긴 그의 사유와 관념도 그 깊이를 더해갔다.


 다시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그동안 그는 14년 만에 산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흙을 짓이기고 섞는 작업은 여전하다. 지금은 햇빛과 달빛, 비와 안개, 나무를 스치는 바람, 그리고 숲의 요정까지 그의 작업을 거드는 모양이다. 색조는 더욱 미묘해지고 신비감이 돌고 있다.
창작행위가 작가의 내적 심층에 위치한 정신작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고려할 때, 작품해석을 위해 작가의 표면적 개인사에 지나치게 의존함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필자는 작품과 개인사의 상호조명은 우선 표면에 나타나는 작품의 일차적 이해 뿐 아니라 숨어있는 의미의 계시를 발견하는 데도 크게 유익하다는 것을 많은 문학작품을 평하며 체득한 바 있다.
특히 시인의 숙명과도 같은 신산한 개인사는 그의 많은 작품들의 해석에 의미 있는 지침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내가 화가의 이력을 들먹거린 것도 바로 개인사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그의 작품이 변모하고 있는지 그 시간적 지침을 설정하고 작품해석과 함께 그 변화의 과정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이다.

90년대는 화가에게 생애 최대의 암흑기였던 것 같다. 앞서 언급한대로 결국 그는 산골에 들어가 원시생활을 하게 되고 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2003년, 서울 롯데화랑에서 ‘땅꽃전’을 연다. 편의상 여기까지를 ‘1기’로 호명한다. 그는 계속하여 산 속에서 흙 그림을 그리며 흙 파먹고 살아간다. 그렇다가 2012년 서울 인사아트에서 ‘땅의 생명전’을 연다. 이 기간을 ‘2기’로 부르고자 한다. 그리고 2018년 오늘 현재다. 물론 그동안 그는 부지런히 그림을 그렸다. 언제 어디서 다시 전시회가 열릴지는 나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그러나 ‘땅의 생명전’ 이후 현재까지를 ‘3기’로 부르기로 하자.

 3. 세상이 새 밀레니엄의 찬가로 요란하던 2000년, 화가는 역으로 대자연만이 숨 쉬는 ‘침묵의 세계’에 들어서있었다. 서리 내린 어느 날 화가는 멀지않은 곳에 핀 한 송이 붉은 꽃을 본다. 다가서서 보니 그것은 꽃이 하니라 한 덩어리 붉은 ‘황토’였다. 화가는 그때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었고 정신없이 그 흙덩이를 쥐고 뛰어내려와 자신이 그린 유화의 붉은 색과 비교해 보았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색은 비슷했지만 육박해오는 감정이 달랐다. 즉시 아교를 사다가 색칠해보니 되겠다 싶어 소품 하나를 그리기 시작했다. 닷새 뒤 맞대보니 그가 40년간 그려왔던 유화작품은 비교대상도 되지 않았다. 그는 결단한다. “됐다. 이제 두 번 다시는 유화 그릴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조도중의 ‘흙그림 시대’의 ‘1기’가 시작된다.
‘황토(黃土)’의 사전적 정의는 ‘누르고 거무스름한 흙’이다. 나는 이 정의에 전혀 만족할 수 없다. 누르고 거무스름한 흙이 어디 하나 둘인가. 내 경험상으로 황토는 오히려 적황색으로 각인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황토집의 벽들은 하나같이 누른빛이 도는 붉은색이다. 특히 화가가 작업하던 곳은 그 특유의 붉은 빛 황토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지역이 아닌가.
화가는 바로 그 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의 작품들을 보면 단연 황색과 적색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7가지의 색을 추출해 냈다지만 시작 단계에서는 아무래도 자연 그대로의 황토색이 우선 화폭 위에 올려 졌을 것이다. 한 예로 「봄빛」(2000)을 보면 그야말로 황토벽 위에 부서지는 봄 햇살을 보는 것 같다. 외에도 「마음의 방」(2000), 「달빛」(2000), 「산빛」(2001), 「돌아온 탕자」(2001), 「둥지」(2002) 등과 같은 작품들이 밝고 따뜻한 황색과 적색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산국(2003) 연작도 꽃의 색깔은 노랑이나 흰색이다. 심지어 「소녀상」(2003)의 소녀도 ‘노랑’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고 있다. 조도중의 ‘흙그림 시대 1기’를 ‘황적색의 시대’라고 불러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이 기간의 여러 작품 중 「소리의 변주」를 주목하기로 하자.

한마디로 이 그림은 가로 세로의 선들과 그로 인해 창출되는 면의 분할로 화면이 구성되고 있는 ‘기하학적인 추상’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선과 면의 평면구성은 적절한 비례와 균형 그리고 그물망 같은 짜임새를 갖추고 있어 ‘이지적인 추상’이라고도 할 만하다.
그러나 그의 기하학적 구성은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식으로 차고 엄격하지는 않다. 선들은 수직수평의 직선이 아니라 부드럽고 완만하게 휘어지고 있다. 또한 그 색도 진해지는가 하면 엷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선이 교차하며 만드는 사각형의 형태도 직각의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변형의 모양들이 되고 있다. 사각 안에는 조그만 원들이 들어차있다. 원들도 그 크기가 서로 다르고 테두리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있다. 같은 기하학적 추상인 「달빛」이 직선과 직각으로 엄정한 구조를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이 그림에는 모든 구성요소들이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보여줌으로서 부드러운 율동을 창출하고 있다.
색채는 강한 표현성을 갖는다. 색채는 어떤 특별한 분위기를 표출하는 것은 물론 문화권에 따라 채택되는 보편적 상징을 가지고 있다. 색의 표현성은 우리의 연상에도 근거하지만 그 명도, 채도, 파장에 따라 생리학·심리학적으로도 관계를 갖는다. 적색처럼 파장이 긴 색은 밖으로 팽창되어 관찰자에게 근접해 보이는 반면 청색은 안으로 수축하여 멀어 보인다. 일반적으로 청, 녹, 황, 황적, 적의 순으로 근육의 힘과 혈액순환이 증진된다고 알려져 있다. 적색 계열은 따뜻한 느낌을 주고 청색 계열은 찬 느낌을 준다는 것도 모두가 주지하는 사실이다. 이 그림의 주조색은 단연 황적이다. 작은 원들은 대개가 바탕색보다 짙은 적색이거나 엷은 황색으로 같은 계조다. 백색과 회색의 원이 나름대로의 표현적 특징을 보이며 조화를 이루고 있지만 주조의 색을 덮을 수는 없다. 흑색 선의 그물은 밖으로 팽창하는 황적의 바탕색을 힘겹게 붙들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색채구성은 ‘긴장효과’를 산출해 낸다.
결정적인 역동성은 유발은 그림 좌측에서 이 그물이 터져버린다는 데 있다. 우측에서부터 그물의 밀도가 흩어지지 시작하더니 마침내 커다란 구멍으로 뚫려버리고 만다. 원들과 바탕색이 구멍을 통해 쏟아져 나온다. 강한 힘의 분출과 그에 따른 운동감 또한 솟구친다. 이런 역동성의 긴장은 이후 조도중의 그림세계를 예고하는 하나의 단편처럼 보인다.

 대자연의 빛 에너지가 넘치는 황적색을 기조로 한 ‘흙 그림 시대 1기’의 그림들은 앞서 언급한 대로 ‘황토’가 그 원료가 되었다. 작품들은 황토처럼 따뜻하고, 밝고, 활력이 있다. 이는 ‘생명력’이 넘치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인간에게 가장 우선적인 것은 생명의 보존, 즉 삶에의 의지다. 선사시대부터 인간의 모든 재능은 이 절박한 욕구에 봉사했고, 미술 역시 음악, 무용, 시 등과 함께 원시의 의식(儀式) -후세의 종교- 으로 표출된 이 생명의지에 대한 복합적 반응의 하나였다. 조도중의 예술 또한 마찬가지다.
당시 그는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그가 산 속에 들어간 것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그는 황토를 보았고 그것은 화가에게 새로운 예술의 생명을 획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 그는 원시로 돌아갔던 것인가. 인류가 최초로 활용한 물감이 황토였다. 황적의 황토가루로 동굴 벽화를 그리고 몸을 단장하기도 했다. 매장 시에는 무덤의 장식용으로도 썼다. 흙을 그림그리기에 사용했던 것은 인류가 추상적·상징적 사고를 발달시킨 최초의 증거물로 여겨지고 있다. 화가는 바로 고대인이 그랬던 것처럼 흙을 주물렀다. 흙은 그에게 생명이나 진배없었다. 실상 흙 1그램에는 일억이 넘는 미생물이 살고 있다고 하니 흙덩어리는 바로 ‘생명의 덩어리’다. 그곳에서 화가는 그 생명의 덩어리를 만났고 그는 그것으로 순수한 ‘원시적 신앙의 열정’으로 그림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 창작된 그의 작품들은 한마디로 직관적 박진감과 함께 넘치는 생명력을 현시하고 있다.

 4. 화가는 계속하여 산 속에서 산사람으로 산다. 7가지의 흙물감은 그동안 갖가지 조합을 통해 320가지로 늘어났다. 그래서인지 ‘흙 그림 2기’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완연한 주조색의 변화다. 황·적 일변도였던 작품에 청색과 녹색이 과감하게 투입되고 있다. 이런 경향이 잘 나타나는 작품 중의 하나가 「축제」(2007)다. 어느 시인은 이 작품에 대해 아래와 같이 노래한다. “당신은 축제 한마당에 초대되었습니다. 꽉 차 넘치는 음악과 기억의 미로에서 뛰노는 사슴과 호수가, 연꽃 진 자리에 들어와 계십니다. 천천히 하늘과 땅과 물을 즐기시며 돌아나가십시오.”
그림에서는 당장 ‘숲속의 왈츠’ 선율이라도 흘러나올 것 같다. 하늘도 푸르고 하늘 담은 호수도 푸르다. 그림에는 연청색 위에 진청색이 바람에 일렁이는 잔물결처럼 뿌려져 있다. 녹색의 잎 사이로 연(蓮)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주위의 숲에는 시인이 노래하는 사슴은 물론 갖가지 작은 동물들이 뛰어놀고 있다. 그야말로 한바탕 대자연의 축제가 벌어진 것 같다. 하늘과 숲과 호수가 있으려면 청·록이 투입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그림의 주조색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 시기 조도중 작품의 색채변모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일련의 작품들이 있다. 「나무 이야기」(2007)에는 푸른 하늘 아래 나부끼는 나뭇잎 사이사이로 햇살이 부서지고 있다. 여기저기 꽃들도 피어있다. 청·록이 대거 사용되고 있는 숲의 정경이다. 「나무 이야기 3」(2007)에서는 아예 그림의 주조색이 하늘과 숲의 나무를 바탕으로 완전히 청색으로 바뀌고 있다. ‘흙 그림 1기’에는 눈에 띠지도 않던 청색 군이 이제 화폭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가히 ‘청록의 시대’라고 불러도 무방할 지경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점이다. 「나무 이야기 4」(2011)에 와서는 다시 뚜렷한 변화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청색은 전체적으로 청회색으로 바뀐다. 나무줄기에도 회색이 투입된다. 엷게 깔린 황토색도 은은하게 회색 바탕의 뒷전을 맴돌 뿐 전혀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있다. 활력으로 출렁대던 화폭은 고요해지고 대신 숲의 정적 속에 깊은 사유가 펼쳐진다. 훗날 ‘3기’ 작품세계의 변화를 미리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이 기간 중의 대표작이라고 생각되는 「포도원의 아침 2」(2008)에 시선을 집중해본다. 한 평론가는 “아침 일찍 나가본 포도원에서 만난 이슬방울, 산꽃, 산열매와 솔방울 등을 그대로 주워 올려 상을 차려 놓았다”며 특히 이슬방울을 머금고 있는 산딸기는 “그 아침 작가를 만나기 위해 밤을 보내면서 맛과 색깔을 준비했을 것이다.”라고 서정적 문체로 이 그림에 대해 평을 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림의 전체적 포치(布置)를 적확하게 지적하는 한편 무정물인 딸기의 내면 의식까지 포착하고 있는 말이다.
의식 행위는 수동적이거나 비자발적 인식이 아니다. 작가가 숲 속에서 산딸기를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내재된 본능에 의해 선택되어 관심의 초점이 맞춰진 특별한 대상이 된다. 이처럼 특정대상을 특별히 주목할 때는 일상적 감각에 의한 ‘보기seeing’가 아니라 ‘바라보기look’가 된다. 즉 모든 정신을 집중하여 눈여겨보는 것이다. 이때 과거의 잡다한 지식과 경험은 별 의미가 없다. 밤새 아름다운 맛과 색깔을 준비하고 아침 산책길의 화가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는 산딸기는 화가의 눈에 ‘신의 선물’에 다름 아니다. 화가는 「작업노트」에서 말한다. “성서에 나오는 ‘육신이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씀을 기억한 탓인지 내 자신은 정말 하잘 것 없는 흙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흙을 물에 이겨 캔버스에 칠하는 자신”이 “더욱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신에 감사하며 구도자적 열정으로 붓을 휘두른다. 그리고 마침내 신의 선물은 화폭에 그대로 옮겨져 아침 이슬에 반짝이며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조도중은 독실한 신앙인이다.

그림 전시회에서 문득 이 작품 앞에 서게 되었다고 하자. 우리는 이 작품에 어떤 편견도 없다. 특별한 기대 또한 없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는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선채 한 1분쯤 숨을 죽이고 그림을 지켜보다가 다시 가던 길을 갈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는 순간적인 ‘마음의 움직임’을 느끼고 그 우연한 즐거움의 충격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림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이미 이 글의 초입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렇게 그림 앞에 붙박여 멈춰 서는 것은 어떤 분석의 과정을 걸쳐 발생한 것이 아니라 ‘본다는 것’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첫눈에 그림은 좋거나 나쁘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었고 그 그림이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에 발걸음은 멈춰 섰을 것이다.
예술작품이 마음을 ‘움직인다’라는 말을 흔히 듣게 되는데 이는 정확한 표현이다. 관람자의 정신적 무의식 반사에 뒤이어 일어나는 즉각적인 정서다. 만약 이 정서가 확실한 관념을 형성하게 되면 그것은 이미 정서가 아니다. 나는 이처럼 ‘마음의 움직임’을 단박에 느끼게 하는 직접적 판단의 작용을 ‘감정이입empathy’으로 본다. 감정이입은 보는 사람이 비자의적으로 자신을 외부 대상에 투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상은 사람이 될 수도, 다른 생물이 될 수도, 무생물이 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보는 사람은 대상과 ‘동일화’되어 그 속성 그대로의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는 새와 함께 하늘을 날고, 바람 맞고 있는 나무와 함께 우리 몸도 휘어지고, 작고 귀여운 붉은 산딸기와 함께 아침이슬에 반짝이게 된다. 한마디로 대상 속에 들어가서 함께 느끼는 것이다.
순간적이고 즉각적인 감정이입을 통해 마음의 움직임을 유발하는 작품의 주된 요인은 무엇인가. 작품은 회백색을 주조로 한 바탕색에 엷은 황토색과 갈색이 혼융되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런 배면의 색들이 만드는 선과 면의 화면 분할, 색채의 상호 조화는 그림에 안정감과 균형감을 견인한다. 녹색의 이파리들이 그림에 악센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그림 중앙의 산딸기 몇은 주위의 어떤 것들보다도 그 채도, 즉 붉은 빛깔의 선명도가 높다. 그 중에서도 정중앙에 위치한 딸기 하나는 특별히 그 선명도가 눈에 띤다. 이 딸기에는 다섯 개의 새하얀 점이 찍혀있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이 열매를 밝게 하는 효과를 주는 동시에 다른 열매들도 동격의 것으로 보이게 한다. 딸기의 빨간색과 상대적으로 채도가 떨어지는 배면의 다른 색들 사이에는 동적 긴장이 발생한다. 중앙의 선명한 적색은 주위의 힘을 강한 인력으로 자신에게 집중시킨다. ‘움직임’의 역동성이 생기고 이 역동성이 또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으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5. 나는 조도중의 ‘흙 그림 1기’를 ‘황적색의 시대’, ‘2기’를 ‘청록색의 시대’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작품들은 생명력이 꿈틀대고 활력이 넘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현재진행형인 ‘3기’에 와서는 강렬한 채도로 충일하던 화폭은 상대적으로 고요해지고 대신 숲의 정적 속에 깊은 사유가 펼쳐지고 있다고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이 시기는 이 글 서두에서 말한 ‘퇴적층에 박혀있는 돌무더기’ 같기도 하고 ‘오래된 소나무 껍데기’ 같기도 하고 ‘굴 껍질더미’ 같기도 한 조도중만의 개성 있고 독특한 형상들이 작품에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형상들은 여전히 힘의 긴장을 발하고 있지만 색채들은 전체적으로 차분해졌다. 회색 군이 대거 작품에 투입되고 그의 신앙과도 같은 황토색도 톤 다운되어 훨씬 은은해졌다. 세 개의 그림을 보며 논의를 계속하기로 한다.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1 이 그림은 같은 제목이 붙은 두 연작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하단 전체와 우단의 일부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빈 곳, 즉 여백이 있다는 점이다. 여백은 회화에 있어 그려진 부분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빈곳은 채워진 곳을 받아들이며 서로 긴장하고 융합하는 가운데 각자 자신의 선명함과 존재를 주장한다. 그려진 부분은 공백 위에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공백 또한 그림의 역동적 변화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의 조형적 공간을 규정한다.
작품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넓은 육지 같은 느낌을 준다. 육지에는 명암과 요철이 뚜렷한, 마치 굴 껍데기 같은 험준한 산들이 요동치고 있고 그 사이 사이에는 조그만 들판들이 보이고 냇물도 보인다. 이 육지는 아래로 달려 내려가다가 바다와 만난다. 이어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있는 곶이 보이고 흩어져 있는 작은 섬도 몇 개 보인다. 바다에 해당되는 부분은 앞서 말한 ‘공백’으로 처리되고 있다.
이 그림에서 바다로 뾰족하게 돌출된 두 개의 곶은 그 구조적 골격의 축을 따라 결정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다. 특정의 목표지점을 향해 이동하는 것 같은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점점 좁아지는 상태를 보여주는 쐐기 모양은 모든 시지각적 기울기가 운동성을 가진다는 일반 법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다. 꼭지점 쪽으로 운동감이 쏠리는 쐐기꼴은 화살표와 같은 효과를 산출한다. 이 작품에서 넓고 무거운 육지에 해당되는 부분은 그림의 바탕 기능을 발휘한다. 여기서 발생된 운동감은 당연히 가늘고 좁은 쪽으로 ‘이동’하게 마련이다. 뾰족탑이나 피라미드에서 넓게 받혀주는 건물이나 지면에 의해 이런 효과가 더욱 강화되는 것과도 같다.
물속에서의 운동은 쐐기 모양의 흔적을 남긴다. 이는 직접적 운동에 의해 비롯된 것이지만 물고기나 화살, 새와 같은 사물도 실제적 운동감을 주는 쐐기 모양의 비스듬한 선을 수렴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우리가 일상 경험하는 사물들과 관련되지 않는 추상미술이다. 그럼에도 뾰족한 쐐기모양의 형태는 그것이 우리에게 화살이나 물고기를 연상시켜 주든 못하든 강한 역동적 효과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구상이든 추상이든 시각예술품에서 이런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색하게 마비된 느낌을 주게 될 것이다.
바다로 돌출되며 좁아지는 두 개의 구조적 패턴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본다. 상대적으로 훨씬 길게 뻗어가는 우측의 것이 좌측의 것을 눌러 우세해 보이는 도형이다. 이처럼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해 지배적이 되면 우세한 쪽은 ‘첨예화(尖銳化)’ 된다. 힘은 그쪽으로 뻗어가며 집중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대조적으로 좌측의 것은 오히려 ‘둔화(鈍化)’된다. 더구나 곶에 매달려있는 것 같은 몇 개의 섬들은 이 둔화의 효과를 배가 시키고 있다. 힘은 패턴의 구조적 골격 선을 따라 작용한다. 그러나 좌측의 선은 연결되지 못하고 섬에 의해 끊어진다. 즉 힘은 분산되고 있는 것이다. 좌우 두 돌출부 사이에서 대조의 긴장이 발생한다.
좀 더 시선을 집중해본다. 한다. 둘 사이는 색상, 명도, 형상 등 모든 것이 유사하다. 3차원의 입체를 이루며 곶 위에 솟아있는 산들의 형상도 그 크기는 물론 굴 껍데기 같은 뚜렷한 명암과 요철이 아주 유사하다. 이런 유사성의 요인들은 서로를 보완하는 동시에 반작용을 한다. 앞서 말한 첨예와 둔화에 의한 힘의 불균형으로 양쪽 사이에는 유사성 안에서도 ‘대위(對位)’ 관계가 발생한다. 대위는 각각 독립하여 진행하는 많은 선율을 동시에 결합시켜 하나의 조화된 곡을 이루는 음악적 기법이다. 마찬가지로 서로 밀고 당기는 여러 힘들의 긴장은 전체적인 조화와 통일을 위해 복무한다. 만약 양쪽이 마치 똑같은 대칭처럼 협력 관계에 있었다면 그림은 멋대가리 없이 엉거주춤해지고 말았을 것이다. 비유사성은 다른 요인들이 변함없는 유사성이 유지될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우리의 눈이 양쪽을 비교하며 그것들의 차이를 유도하는 것은 바로 유사성이기 때문이다. 예로 함께 서 있는 두 사람을 볼 때 우리는 누가 크고 작은지, 뚱뚱하고 훌쭉한지 쉽게 비교할 수 있다. 둘은 사람이란 유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옆에 강아지가 있었다면 이미 형태가 다른 확실한 비유사성으로 양쪽을 비교하고 자시고 할 일도 없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우리의 시선은 우측 바다 위에 뜬 가벼운 깃털 같은 구름의 형상으로 옮겨진다. 이것은 같은 바다 위에 있는 좌측 섬들의 뚜렷한 입체적 형상과는 그 느낌부터 다르다. 배경색보다도 오히려 그 색깔의 농도가 엷어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힘이 없다. 따라서 인접한 육지의 인력에 의해 곧 빨려 들어갈 것 같다. 물론 이런 경·중의 명확한 대비는 방향성 긴장감의 효과를 발생시킨다. 그럼에도 이런 형상은 앞서의 여러 작품에서는 보지 못한 의외의 상징적 표현이다. 깊은 사유의 일단이 엿보이는 것 같다. 곧 사라져버릴 구름 한 조각, 그것은 우리의 깃털 같은 존재의 가벼움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2
약간의 기울기를 가진 거친 나무껍질 같은 형상이 작품 전체에 세로 방향으로 뻗어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역동적인 움직임의 힘도 함께 뻗어가고 있다. 같은 제목이 붙은 앞의 작품 1과는 색상의 톤이나 밝기, 작품의 구조 등이 상당한 유사성을 보여준다. 연작인 까닭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작품 1과 같이 바다에 해당하는 빈 공간이 없다. 꽉 찬 그림 안의 형상들은 팽창하여 캔버스 밖으로 튀어나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그림에는 바다 대신 육지 안의 호수처럼 역시 작품 하단에 두 곳 회색의 커다란 빈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인력과 척력이 맞물려 힘의 긴장이 발생하고 있다. 이 두 곳의 공간은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다. 우측 공간 안에는 붉은 물감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형상을, 좌측 공간 안에는 거친 붓 터치로 그어진 몇 개의 표적 없는, 어떤 기호와도 같은 선이 그어져 있을 뿐이다. 나는 이 두 공간을 특별히 주목하고자 한다.
우선 우측 공간을 보자. 이곳에 흘러내려가는 붉은 색이 없었다면 주위의 다른 형상과 거의 구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것 외에는 모든 색상과 명도가 유사하다. 그러나 ‘피의 흐름’과도 같은 이 형상은 그림 전체에서 오직 이곳에서만 나타난다. 피는 곧 생명을 의미한다. 화폭 밖으로 팽창하려하는 강한 숲의 생명력을 붉은 피로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은 화가의 신앙에서 비롯된 인간의 죄악을 대속하는 구원의 상징으로 피의 흐름이 표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회화의 기법 상으로도 ‘물감의 흘림’과도 같은 이런 형태는 처음 발견되는 변화다.
좌측의 공간을 본다. 더 주목을 요하는 부분이다. 무의미하게 휘갈긴 것 같은 몇 개의 선은 꿈의 차원에서 솟아나온 것 같다. 자신의 행위를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무의식’이라고 한다면 무의식 미술과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에 따른다면 이 무의식적 요소는 소위 프로이트가 ‘전(前)의식’이라 부르는 상태로 의식 수준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마음의 심층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자아의 특색이 가장 잘 드러나는 심리적 존재 차원으로 간주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꿈은 목적적·인식적 행위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것을 해석하면 꿈이라는 것은 꿈꾸는 사람과 반드시 어떤 관련을 맺고 있음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어떤 수학적 계산에서도 벗어난 선들은 정확성도 특정 방향성도 없는 낙서 같다. 공간 좌측의 세 개의 붉은 선은 빠른 필체로 무질서하게 아래로 내려가다가 원을 긋는다. 좌우로 움직이던 우측의 검은 선은 갑자기 직각의 굵은 선이 되어 멈춘다. 바탕색보다 약간 짙은 회색의 긴 선이 그것을 이어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간다. 그리고 공간 하단에서 다시 검은 색으로 변하며 위쪽으로 쳐 올라가며 그 궤적을 끝낸다. 마치 글씨에서의 삐침, 파임, 치침이 뒤섞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화가의 붓놀림은 학습과정으로 획득된 것도 아니고 지적 산물도 아니다. 잠재의식 속의 자아가 자유스럽게 그 원형적 힘을 몇 개의 선으로 표출하고 있을 뿐이다. 감각적 생명의 리듬으로 그어진 이 단순한 선들은 자신을 드러내고자하는 화가의 서명으로도 보인다. 어찌 보면 작품이라는 것 자체가 실상 작가 자신을 외부로 드러내는 하나의 서명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미술은 막연한 것에서 윤곽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선은 회화에서 외형을 만드는 최초의 수단이다. 동굴 속의 원시인도 그랬고 오늘날 어린이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주제를 묘사하기 위한 요약이며 추상적 고안을 위한 속기(速記)다. 선을 사진과 같은 리얼리티와 비교한다면 대단한 추상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우리가 회화매체로서의 선이 힘의 동작에 의해 대상의 새로운 창조라고 이해한다면 이 일차원적 흔적은 지각된 형상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묘사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조도중 역시 소묘에서 채색으로 진행되는 동안 수많은 선을 채택했을 것이다. 그 선은 이어지며 면의 윤곽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끊어지며 면이 내부로 밀려들게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공간 안의 선은 그 경우가 다르다. 언급한 것처럼 서명과 같은 단선의 추상일 뿐이다. 이것 역시 조도중의 회화에 있어 아주 예외적인 일이다.
 우리는 「어디서 시작되었는가.」라는 두 연작을 보며 조도중만의 독창적 회화 조형미를 보았다. 즉 도형의 ‘첨예화(尖銳化)’와 ‘둔화(鈍化)’에 의한 힘의 긴장, 둘 사이의 유사성 속에서 오히려 강조되는 비유사성, 깃털 같은 가벼운 형상이 야기하는 존재의 가벼움, 피의 흐름으로 구현되는 생명 혹은 종교적 상징, 지각된 형상이 일차원의 선으로 표출 되는 추상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깃털 모양의 은유, 흘린 물감의 상징, 어떤 서명 같은 기호 등의 새로운 기법은 향후 조도중의 작품세계의 또 다른 변화를 가늠하게 하는 지표와도 같이 보인다.

시간이전
이 작품은 아주 최근에 그려진 것으로 ‘조도중 예술세계의 현재’를 압축해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흙 그림 시대’ 진입 이후 변천과정의 특징들이 모두 갈무리 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가 끊임없이 추구하는 ‘독창성’의 일단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좌측에서 우측으로 기울어진 세로의 커다란 선들 –숲 속의 나무줄기와도 같은- 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그림 좌측의 경사 선들은 우측에 비해 비스듬한 각도가 상대적으로 커 그 기울기가 완연하다. 경사는 수직수평과 같은 일반적 기본위치에서 변형된 형태로 지각되고 이는 강한 방향성 긴장을 부여한다. 바로 비스듬한 단위들의 집적체로 처리되어 있는 작품 안의 나무들은 그림 전체에 긴장과 함께 뻗어 내려가는 운동감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 상단에서 시작되는 사각의 형태들이 세로의 선들을 부수기 시작한다. 그리고 명도를 높여가며 작품의 중앙으로 진출한다. 직선들은 곡선의 원꼴로 바뀌고 횡선 대신 종선이 뚜렷하게 중심을 가로질러 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세로로 뻗은 전체의 나무줄기들은 중앙에서 그 평형이 완전히 깨진다.
한 발로 걷기는 힘들다. 신체평형의 유지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다. 우주 자체가 평형의 상태를 지향하고 비대칭을 배제하려 한다. 따라서 우리는 절로 불균형과 불안정에서 균형과 안정의 체제를 추구하는 심리적 현상을 보이게 마련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불균형 속에서의 부단한 행동’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주위 환경에서 끊임없이 에너지를 끌어들여 걷고, 뛰고, 생각하고, 바꾸고, 어떤 무엇을 창조해 낸다. 어찌 보면 이런 욕구 충족을 위해 발산되는 힘이야말로 아름다운 ‘생명의 힘’이라 할 수 있다.
나에게는 작품 중앙부의 파격과도 같은 변화가 바로 불균형 속의 힘찬 움직임으로 보인다. 만약 예술은 조화와 균형의 제시라는 것만 염두에 두고 작품에 임했다면 세로의 경사는 질서 있게 중앙에도 반복되었을 것이고 부조화의 마찰은 최소화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반대방향의 압박에 대항하는 투쟁적 요소가 사라진 작품은 그 역동적인 ‘생명의 힘’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중심부 상단에서 우리는 두 개의 검은 구멍 같은 형태를 발견한다. 캔버스에 뚫린 구멍과도 같은 느낌이다. 이는 신경계의 균형을 깨뜨리며 침입해오는 외부의 힘과 같은 자극으로 지각된다. 갑자기 화면에는 투쟁의 긴장이 발생한다. 투쟁은 침입자를 배격하고자 하는 힘과 들어와 자신을 보존하려는 힘이 서로의 항력으로 충돌하는 데서 비롯된다. 단순한 점 하나에도 밖으로 밀어내려는 힘과 안으로 들어오려는 힘이 있는 법이다. 따라서 이 작품 중심부에 있는 두 개 구멍 안팎에서 발생하고 있는 ‘밀고 당김’의 항력은 우리 시지각의 대뇌 중추부를 자극하여 강력한 역동성의 긴장을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위에 있는 상대적으로 작은 구멍은 주위의 밝은 명도에 의해 견제되어 그 긴장의 세기가 더 뚜렷하다.
작품 우측하단에서 숲 밖을 내다보는 귀여운 아이 얼굴을 발견하고 우리는 깜짝 놀라는 즐거움을 느낀다. 이 해맑은 얼굴의 주인공은 ‘숲 속의 요정’임에 틀림없다. 나는 앞에서 햇빛과 달빛, 비와 안개, 나무를 스치는 바람, 그리고 숲의 요정까지 최근 조도중의 그림을 거드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바로 그 요정이 여기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형(形)은 눈에 의해 포착된 대상의 본질적 특징의 하나로 우선 어떤 형체의 2차원적인 면의 윤곽이라 할 수 있다. 면은 1차원의 선(線)에 의해 나타난다. 이 그림에서도 몇 개의 선이 얼굴의 형을 만들어내고 있다. 얼굴 가장자리의 윤곽선은 실상 없는 셈이다. 낮은 명도의 주위 숲에 비해 상대적으로 명도가 높은 얼굴이 스스로 윤곽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몇 개의 선으로도 맑고 환한 아이의 얼굴은 정확하게 묘사되고 있다. 한 대상의 모습은 눈에 비치는 이미지에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가리어져 보이지 않는 공의 뒷면은 눈에 보이는 앞쪽 2차원의 모양을 연장함으로 완성된다. 따라서 우리는 공의 일부만 보는 게 아니라 3차원의 구체(球體) 전체를 보게 된다. 게다가 대상에 대한 지식은 우리의 관찰과 밀접하게 결부된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보편적 모습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숲의 요정의 얼굴을 보며 우리는 아이의 귀여운 모습 전체를 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는 대상에 대한 형상을 정도 차이는 있으나 구체적으로 담아낸 ‘구상’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숲 사이로 내다보는 얼굴이 아이의 얼굴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재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구상이 추상에 혼재하고 있는 셈이 된다.
실상 우리가 흔히 추상미술이라 하는 작품들도 정확하고 순수한 의미에서는 구상미술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클레의 추상을 보면 왜곡되었지만 어떤 사람의 형상이 연상된다. 외에도 많은 추상회화의 부분적 표현들을 확대하여 본다면 서로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구상미술의 표현적 요소가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구상과 추상미술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명확히 선을 그으려 하는 것은 단편적인 수용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굳이 구분하려한다면 반추상이라 부르면 된다. 추상작품을 하는 어느 작가도 그 출발점은 대부분 자연의 재현으로부터인 경우가 많다. 그 재현적인 요소를 어느 정도 없애는가에 따라 구상과 추상이 나눠질 뿐이다. 이 그림에서 나무껍질 형상의 조형방식은 확실히 추상이지만 아이의 얼굴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구상적 표현인 것이고 이렇게 해서 갑자기 등장한 숲의 요정은 그 의외성으로 그림에 신선한 활기를 준다.
격식을 깨뜨리거나 일상의 인식을 벗어난 파격과도 같은 요정의 등장은 결코 ‘정적’인 것이 아니다. 우선 우리의 시선을 끄는 어떤 인력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즉 ‘동적’인 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힘의 움직임이 격렬한 것은 아니다. 조용히 숲 밖을 내다보는 아이의 순수한 얼굴은 주위의 색조를 더욱 미묘하게 하고 신비감이 감돌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의 섬세한 영혼의 숨결까지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평온과 활력의 미묘한 혼성으로 고요함과 역동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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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도중은 무엇보다도 ‘독창성’에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두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을 개성화하여 새로운 창조의 미로 자신의 관념을 작품에 담고자한다. 즉 새로운 미적 영역의 확장으로 또 다른 세계성의 획득을 도모하려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숲은 한국의 한 지방에 있는 숲인 동시에 그가 창조한 자신의 관념과 메시지를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숲이다.
또한 인류 문화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닌 토기·토우(土偶)·도기·자기·와전(瓦塼) 등은 모두 흙에서 비롯되고 있다. 조도중이 바로 이런 흙을 자신의 예술적 창조의 재료로 쓰고 있다는 사실은 큰 의미를 갖게 된다. 동시에 대단한 ‘독창성’을 보여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오늘도 이 독창적인 일을 수행함으로 자신만의 미적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검은 흙” 위에서 핀 꽃이 검은 꽃은 아닙니다
조도중 개인전에 부쳐 - 2003

김남곤 (시인)

그 이름을 부르려면 먼저 찬물 한 그릇을 마시고 나야 합니다
메이는 목을 축이고 나면 목구멍 끄트머리 어디쯤에서 구슬이 되어 튀어오르는 이름 석 자와 고뇌에 찬 그의 얼굴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금 도시와 가족을 떠나 시인 친구인 진동규가 몇 세월 비워둔 시골 외딴집에서 갑골문자 같은 삶의 이랑을 파고 있습니다
문설주에 기대서지 않아도 하루내내 울어대는 뻐꾸기 소리와 벗삼아 고독을 달래고 있는 조도중은 손에 쥔 것 없이는 살아도 인간에 대한 그리움 없이는 못사는 천성이 순하고 여린 풀잎 같은 사람입니다.

 어쩌다가 청산 밑에 자리를 깔고 앉았느냐고 묻지 않아도 됩니다.
산이 그립고 물이 그립고 나무가 그립고 흙이 그리운 그 사람에겐 거기가 꼭 안성맞춤인 세상일 겁니다. 그는 거기서 쌀 한 말이면 한 달을 배 두드리며 삽니다.

 그렇게 살면서 청솔가지를 스치고 지나온 산소를 마시거나 가지고 놀다가 지치면 땅속 깊이에서 광맥처럼 발견한 흙을 물감 삼아 자신의 영혼을 담보로 묶어 놓고 치열한 모습으로 창작의 붓을 들기 시작합니다.
그 색소로 하여금 조도중은 나무나 풀이나 꽃들의 소유인 지하자원을 훔친 최초의 화가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붉은 흙 위에서 핀 꽃이 붉은 꽃이 아니듯 검은 흙 위에서 핀 꽃이 검은 꽃은 아닙니다.
화가에게는 그 오묘한 자연의 경이를 통해 흙의 색깔이 아니라 색깔 속에 용해된 흙의 내재미를 찾아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밤낮없이 흙과 더불어 영혼을 불태우고 흙과 더불어 미래를 꿈꾸는 그가 이번에는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겁 없이 서울행 버스를 탔습니다.
화가가 시골집을 비우면 뻐꾸기 혼자서 산머리를 날아다니며 울겠지만 청정한 흙내음을 보듬고 간 서울의 공기는 한껏 맑아지리라 믿습니다.

그는 가녀린 붓끝을 세워 오색빛깔의 돌비늘로 곤(鯤)의 날개를 짓고 있는 중이다.
 

흙과 신앙의 화가
조도중 개인전에 부쳐 -2003

이보영 문학평론가

이번 조도중 개인전을 처음 대하는 미술애호가들은 조도중이 서양화가라는 사실을 의아하게 여길 것 같다. 작품에서 쓰여진 화구가 우리의 눈에 익은 유화구가 아니요, 그 주제도 서양화의 그것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도중의 화구는 그가 고심하며 찾아낸 여러 색의 흙을 바탕으로 하여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것이요, 그의 주제 역시 대지와 관련이 깊다. 우리의 속담에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농부가 뿌린 씨와 한 치 틀림이 없는 소출이 땅에서 나온다. 조도중이 ‘흙’을 거의 미칠만큼 사랑하게 된 것도 이 흙의 원시적 정직성 때문이었겠지만, 흙에는 또 하나의 미덕이 있으니 곧 참을성이다. 그것은 풍성한 수확의 계절을 꾸준히 기다린다.


조도중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예술과 신앙의 관계라는 문제는 풀기 어렵지만 조도중이 흙의 신앙인이 된 것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구약성서’창세기의 말에 감동한 결과이기도 했을 것이다. 흙은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태양처럼 우주 생명의 근원일 뿐 아니라, 정직하고 참을성 있게 기도하는 마음의 고향이다.


조도중의 창조적 상상력이 이 흙의 신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은 확실하다. 그의 흙은 신앙이 침투된 흙이요, 그의 신앙이 의지한 하나님의 말씀에는 흙의 진실성이 배어있다.
우리는 조도중의 약 20년 전 작품의 스타일을 기억한다. 그것은 세련된 도시적 감성에 지배되어 있었고, 파울 클레 식의 기지가 번득이곤 했었다. 그의 작품을 본 사람은 거개가 그와 같은 스타일이 계속되고 발전되리라고 믿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20년 후의 조도중은 전날의 그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흙’으로 돌아가 있었으니, 놀라운 변신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변신이 비단 토착적 정서의 표현충동의 산물이면서 그것을 넘어선 종교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의 놀람은 부질없는 것임이 판명된다. 그 스타일의 변화는 그의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발전된 창작방법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떠오른다. 화가의 심혈을 기울인 모든 작업이 자기 실현의 길, 또는 본연의 자기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과연 흙과 신앙에 따른 조도중의 창작은 그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는가? 이런 당연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 우리는 그의 작품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조도중의 대표작의 하나일 < 숲 >을 검토해보자.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분위기로 가득찬 이 작품에서 나무줄기와 꽃들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그 형상이 추상화되어 있다. 우리는 이 추상과 추상화에서 인위적인 것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 숲 > 에서의 그 추상화는 기묘하게도 인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역설이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숲’자체가 전부 흙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화구 자체도 흙그 결과 숲의 나무들은 흙의 나무들이 된 것과 같으며, 바로 그 점에서 숲나무들이 다름아닌 대지적인 ‘생명의 나무들’임이었음이 밝혀지게 된다. 이것은 < 나무 > 라는 작품에서도 같다.


눈을돌려 < 인동초 >를 보자. 그것은 제목이 암시하듯 갈등과 고난의 겨울을 겪어야 하는 수난자의 상징이다.
화면에서 밝은 색의 나무 줄기와 꽃들이 검은 색의 그것들과 얽혀 있는 형상도 그 점을 암시한다.
그러나 한 개의 꽃을 포용한 화면 중앙의 ‘사랑’의 둥근 원에 의하여 그 고난의 극복 의지가 동시에 암시되어 있기도하다. 그 구도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모든 갈등을 화해시키는 그 ‘사랑’의 원에는 뭔가 마술적인 요소가 함축되어 있다.


조도중은 자연 혹은 인간 세계의 ‘봄’만이 아니라 그 냉엄한 겨울도 동시에 관찰한다. 그것은 갈등과 고뇌의 회색 세계로서 봄 기운이 다소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 겨울 숲 >이 바로 그런 세계로서 나무 줄기들이 얽힌 모습과 그 분위기는 다숩고 긍정적인 게 아니라 냉랭하고 부정적인 것이다. < 숲 >이나 < 나무 >의 구도가 단순한 것과 달리 < 겨울 숲 >의 구도가 복잡한 것도 그 갈등과 고뇌에 연유한다. 따라서 우리는 < 숲 >과 < 나무 >를 < 인동초 > 및 < 겨울 숲 >과 동시에 보고 그 대조적 의미를 음미해 보아야 한다.


< 야생화 >는 우거진 숲을 배경으로 하여 두 개의 야생화를 화면 중앙의 상층부에 배합해 놓고 있다. 그런데 그 무수한 숲 나무들은 조도중 식으로 ‘흙’나무들로 변신되고 있는데, 이 숲의 생명력이 토착성과 그 밀집성에 의하여 강조된 것도 조도중적이라 하겠다.
그의 작품에서 정말 기묘한 작품이 < 소리 >다. 마치 옷감의 많은 줄무늬를 세로로 조립해 놓은 셈인데, 무수한 점과 같은 선으로 이루어진 그 줄무늬들이 곧 음악의 소리로 화할 것만 같다.
물론 생명의 소리로서 그것은 < 빛과 리듬 >에서도 변주되고 있다.


< 소녀상 >의 경우 무늬로써 암시된 배경의 꽃 무늬와 숲은 소녀가 태어나고 자란 농촌을 연상시킨다. 소녀가 입은 한국식 저고리와 치마 역시 농촌 소녀의 소박한 생활을 말해준다. < 소녀상 >의 유별난 특징은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큼직한 눈인데, 그것은 무엇을 암시할까? 나는 그것을 태양의 상징으로 본다. 그 햇빛은 보석들이 박힌 원광 비슷하게 소녀의 머리를 둘러 싸고 있고, 심지어 입술에도 햇빛이 묻어 있다.
< 소녀상 >에서 소녀는 그 머리와 특히 눈에 의하여 태양의 힘이 마술적으로 암시된다. 또한 < 소녀상 >은 그 화면 전체가 소녀와 그 배경으로 채워지지않고 여백을 남겨 두었는데, 그 여백은 꾸밈이 없는 소녀의 일상적인 소박한 자태에 잘 어울린다.

지금까지 언급한 조도중 작품의 구성법과 그 분위기는 그에게 영향을 주었을 클레를 연상시킨다.클레 역시 그의 이미지들의 추상화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존중하고 그것을 만년에는 기호와 암호를 이용하여 유희적으로 표현한 화가였다. 그러고보면 < 옥합을 깨뜨릴 때 >의 층층이 쌓인 < 옥합 >을 암시하는 네모꼴 형상들에 나타난 추상성과 유희성은 클레를 상기시킨다. 또한 조도중 작품의 중요한 요소인 마술성도 클레의 그것과 상통할 것 같다. 그러나 클레가 창출한 이미지들이 아무리 동화적, 신화적인 것일지라도 주제 표현의 그의 상상력은 도시적, 분석적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고, 그 점에서 그것은 조도중과 다르다.
조도중의 세계는 농촌의 흙이 그 기반이 되어 있고, 단순한 정서적 호소력이 그의 지적인 구도를 지배할 만큼 화면에 침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흙에는 생명력과 동시에 ‘진리’이자 ‘생명’인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이 침투된다. 또한 클레의 유화에서 직감되는 집요한 물질성이 아니라, 소박한 식물적 정신성도 클레와의 차이점으로서 그와 우리를 친근하게 해 준다.
클레의 화면 구도와 분위기가 이지적으로 냉정하다면, 조도중의 그것은 앞에서 말한대로 흙빛으로 훈훈하다. 전자가 도시적이라면 후자는 농촌적, 토착적이다. 조도중은 클레를 그 나름대로 넘어서려고 한 게 아닐까?

여기서 상기되는 화가는 반 고흐다. 프랑스로 가기 전 네덜란드 시기의 유명한 걸작 < 감자 먹는 사람들 >에 대하여 반 고흐는 ‘밀레의 농민은 그가 씨를 뿌른 그 땅의 흙으로 그린 것 같다’는 논평이 자기의 이 작품에도 해당된다고 동생 테오에게 편지로 말했는데, 이 경우의 ‘흙’은 실지 화구가 아니라 흙에서 일하고 사는 농민적 정신의 비유로 해석된다. 그러나 조도중은 그 농민의 정신을 ‘흙’이라는 화구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농민의 정신이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것이었음도 반드시 주목되어야 한다.
반고흐의 작품은 대부분이 그 표현주의적 양식이 말해주듯이 말세적 사회에서 불가피한 고뇌의 산물이었다면, 조도중의 세계는 그게 아무리 고통스럽고 신산한 것일지라도 종교적 신앙에서 우러나는 밝은 희망이 있고 그것은 ‘흙’이 말해주는 한국 농민의 낙천적인 본 바탕 심성 덕분이다.
그와 같은 ‘흙과 신앙’에 기초한 인생관을 가지고 조도중은 그 본연의 예술 세계를 창조하려 했을 것 같고 여기에 그 나름으로 성공하고 있다. 그의 개인전이 눈길을 끄는 비밀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는 작품마다 제목 다름에 ‘재료 흙’ 이라고 쓴다.
어쩌면 그 ‘흙’이 조도중 자신의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밤과 낮의 경계도 없이 쌓아올린 결과물
조도중 개인전에 부쳐 - 2003
시인 진동규

흙은 생명의 모체이다. 흙이 물을 머금으면 씨알이 삭을 틔우고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빛을 받고 바람을 맞으며 생명이 시작되는 것이다.
흙과 , 물, 바람, 불을 우주의 4대원소라고 했다. 조 화백의 그림은 여기에서 그 출발점을 찾는다. 흙과 물을 이겨서 거기에 바람과 빛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조화백의 작업실은 그대로 흙구덩이라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제 몸 하나 뉘일 자리 빼놓고는 온통 흙이다. 우리가 보기에 그저 황토흙이거니 하는 흙을 분리해 내는 데 돋보기를 들이대야 한다. 그렇게 섬세한 차이의 명도와 채도를 나누고 거기에 번호표를 붙인다. 이백오십 가지가 넘는 색을 흙에서 찾아냈으니 본인도 그 색을 가려쓰기가 어려웠으리라.

내가 아는 한의 기록으로는 미술사에 이런 그림은 없었다. 안료를 가지고 이만큼 치열하게 고민했던 작가는 없었다. 물론 전에도 부분적으로 흙을 사용한 작가는 있었지만 오로지 흙으로만 작업을 했던 작가는 없었다. 뒷날 우리 역사는 조도중을 흙의 작가로 기록할 것이 틀림없다. 그는 흙의 독특한 맛과 색의 깊이를 잘도 이끌어 낸 성공한 작가다. 오일 칼라에서 어떻게 이렇게 담백하고 깊은 맛을 끌어낼 수가 있다는 말인가!

조도중을 새로운 작가로 태어나게 만든 것은 운명론으로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대학에서 그 당시 우리 화단의 원로이셨던 기라성 같은 스승을 모시고 탄탄한 기초를 닦은 그가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던 사연, 그러던 그가 다시 캔버스 앞에 앉기까지의 인간적인 절절한 사연, 어찌 필설로 가능할 것인가. TV도 라디오도 신문도 없는 깊은 산 속, 밤과 낮의 경계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극한적인 한계에 맞서 싸우는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고마운 것은 이번 작품전이 그런 인간적인 감성에 기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로서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펼쳐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성과물이다. 물론 여기에 흙이라는 매체의 성분을 과학적으로 검토해보고 또 시간이라는 여과 장치를 전제로 하고 하는 말이다. 자연색 그 자체이고 보면 변질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이것 또한 작가의 명운이다.

큰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