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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Press Reports

 


[헤럴드경제]
온라인 활로 열자…70대 ‘흙의 화가’, 세계 무대로…

문체부-문예위 ‘아트체인지업’ 사업
‘흙의 화가’ 조도중, 세계 무대 ‘거장’ 찬사
함연지 출연 웹뮤지컬 ‘보름 오는 날’ 인기
 
팬데믹 시대 예술가에 새 활로와 기회
다양한 예술콘텐츠 만나는 접점 마련

스위스아트엑스포에 걸린 조도중 화백의 작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조도중 화백의 작품들은 직관적인 활기가 느껴지며, 숨이 막히도록 아름답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예술 천재의 작품이다.” (스위스아트엑스포 창업자 페트리샤 젠 클로젠의 평론)

수백 가지의 흙을 골라내 자연 그대로의 빛깔을 찾아냈다. 조도중(74) 화백은 ‘소일 아트(Soil Art)’의 창시자다.
그는 지난 20여년간 ‘자연의 흙’을 재료 삼아 그림을 그렸다. 1997년 전북 고창의 산속 작업실에서 은둔하며 지낼 당시, “한라봉 크기 만한 붉은 흙덩어리를 꽃으로 착각”한 것이 물감을 대체하는 재료를 사용한 계기였다. 조 화백은 “흙에는 의외로 고유의 색이 많다”며 “물감이 12가지 색의 혼합과 확장인 것처럼 흙은 고유한 명도, 채도로 수천 가지의 색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가 온 다음 날 흙을 캐내 정제 과정을 거쳐 수백 가지 색을 만든다. 흙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조 화백은 “물감은 미끄러지며 색이 칠해지지만, 정제돼 가루화된 흙은 접착력이 없고 미끄러지지 않아 흉내내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는 ‘창시자’라는 수사가 무색하게도 국내에선 그리 화려한 명성을 얻진 못했다. 그러다 70대가 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대중문화계에 윤여정(‘미나리’), 오영수(‘오징어게임’)가 있다면, 미술계엔 조도중이 있었다. 세계는 조 화백을 “현대미술의 거장”이라 칭송했다. 미국 뉴욕에 위치한 아고라 갤러리를 비롯한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앞다퉈 그의 작품을 ‘모셔갔다’. “현대미술에 중대한 공헌을 해줘 감사하다”(마틴 번스타인 아티팩트212(artifact212) 갤러리 대표)는 찬사도 함께 보냈다. “모방할 수 없는 독창성, 물감으로는 흉내낼 수 없는 흙그림의 빛깔”은 전 세계 미술계가 주목한 이유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진행하는 ‘온라인미디어 예술활동 지원 아트 체인지업’에 선정, 2020년 연말에 홈페이지를 오픈하고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구축하자 두 달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1967년 제1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최연소로 입상하며 데뷔한 이후 일생을 그림에 몸 바쳤지만, 지금의 성취는 상상 밖의 일이었다. 영어로 게시물을 올리는 홈페이지와 SNS에는 미술계 관계자들은 물론 애호가들이 수없이 방문한다.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유럽 지역에서의 방문자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미국 홍콩 등지에서 많이 찾는다.

‘흙의 화가’ 조도중 화백은 2020년 연말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구축한 이후,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작가가 됐다.  ‘자연의 흙’을 재료 삼아 그림을 그리는 조 화백은 “현대미술의 
거장”이라 칭송받으며 해외 유수 갤러리에서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조 화백 측은 “10개월 사이에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등 전 세계 10개국 15개 갤러리에서 연락이 와 다양한 전시를 진행했고 현재도 기획 중”이라며 “온라인 활동 이후 아고라 갤러리에서 작품이 8000만 불(한화 965만원)에 팔리며 꼬리를 물고 전시 초청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무대에서의 성취로 국내에서도 조 화백을 찾는 일이 많아졌다.
유례 없는 팬데믹으로 오프라인에서의 예술활동은 가로 막혔지만, ‘아트 체인지업’의 지원금으로 구축한 홈페이지, SNS 등의 온라인 활동은 지속가능한 예술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계기였다. 조 화백 역시 “오랜 시간 활동하면서도 산속에 틀어박혀 있어 이름도 작품도 알리지 못했고, 외국에서 전시를 한다는 것은 방법도 없고 꿈조차 꿀 수 없었다”며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들이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가능하게 됐다는 것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트 체인지업’은 오프라인 중심의 예술활동을 온라인으로 확장, 예술가들의 실험과 도전을 지원하기 위해 진행한 사업이다. 2020년 첫 회를 시작, 2021년엔 175개 사업이 선정해 총 40억 5000만 원을 지원했다. 분야는 전 장르를 망라한다. 문학, 시각예술, 연극, 뮤지컬, 무용, 음악, 전통예술, 다원예술 등 기초예술 전 분야의 다양한 작품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트 체인지업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다.

공연
제작사 아르뜨락도 이 사업을 통해 웹뮤지컬 ‘보름 오는 날’을 제작했다. 고윤진 아르뜨락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뮤지컬 공연이 연기와 취소를 반복하며 어려워지자, 뮤지컬을 지속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 온라인 콘텐츠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대형 뮤지컬 제작사가 웹뮤지컬을 선보인 사례가 있지만, 중소 제작사의 입장에선 제작비와 영상 문법 구현의 어려움으로 시도하지 못한 도전이었다. ‘오뚜기 3세’이자 앞서 대형 제작사의 웹뮤지컬 ‘킬러 파티’에도 함께 한 뮤지컬 배우 함연지가 출연한 이 작품은 타로카드를 소재로 한 일상의 판타지 물로 젊은 세대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웹뮤지컬 형식은 “뮤지컬 장르의 진입 장벽을 낮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작품은 추후 타로카드와 관련한 1분 이하 숏츠로 제작, 또 다른 형태의 콘텐츠로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아트 체인지업’은 예술가들에게 온라인이라는 새 활로를 개척, 활동 영역 확장의 가능성을 열어줬다. 이를 통해 대중에겐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넓혔고,다양한 K-콘텐츠가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조도중 화백은 올해에도 미국에서 열리는 ‘근현대미술 거장 전’을 비롯해 스페인, 스위스 등지에서 다양한 전시를 예정하고 있다.

조 화백 측은 “인맥, 자본력의 부족으로 해외 무대에 나갈 수 없는 실력있는 작가들이 이러한 지원을 계기로 새로운 기회를 얻고, 자신의 작품을 알릴 수 있게 됐다”며 “온라인 플랫폼 구축을 통해 한국의 작가들이 세계 무대에서 더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러한 활동이 K-아트를 선도하고, 한국의 위상을 빛낼 수 있는 첫 걸음이 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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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작가, 그것은 운명일까?

- 2003 오늘의 한국

 예술과 신앙의 관계, 그것은 ‘금세기에 이런 작품은 없었다’고 극착을 마다하지 않는 진동규 시인과도 여백의 대화로 남겨놓은 부분이다.
“땅속에서 하나의 색채를 찾아낼 때마다 기도하고 또 기도했어요.
작업 태도에서 소중히 하는 마음이 있어요. 내가 익힌 경험. 지식, 테크닉, 상식 그 모든 것들을 매 작품마다 적용되지 않기를 원해요. 저의 40년 테크닉을 최대한 거부합니다.
거부하고자 하는 그 생각조차 사라질 때 진정한 것을 얻을 수 있어요.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그림을 그리게 해 달라고, 지혜를 주십사 늘 기도를 드렸고 그 소망을 이루어주셨습니다“
 흙 작업에 몰두할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으며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느낀다는 그는 가급적 우리나라가 아닌 해외에서도 개인전을 갖고 싶어한다.
“상상력이 멈출 때 작가는 스스로 붓을 놓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하던 조화백이라면 세계의 미술 심장부 맨하튼이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깜짝 놀랄 ‘땅꽃, 그 시대의 역작’들을 토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에겐 물감이 필요없다.

 -작품집 2012년에 실린 _월간시사종합지_ 오늘의 한국 기사중에서

 그는 도시와 가족들을 떠나 절친한 벗 진동규(전 전주 예총회장) 시인이 몇 세월이나 비워둔 고창 구시포의 시골집에서 뻐꾸기와 해오라기, 온갖 꽃 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흙과 씨름을 하고 있다.
그것도 흙 중의 흙, ‘흙 중의 왕’이라 일컬어지는 황토와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3년 전 늦가을 이었어요. 어느 날 산책길에서 빨간 꽃이 피어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발그스름하고 주먹만한 흙이 너무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겁니다. 여태껏 보지못한 색깔이었어요. 물감으로는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색채가 거기에 있었어요."
진동규 시인의 말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고창 땅에 와서 모양성을, 고인돌을 봤어도 황토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오로지 조 화백, 그밖에 없을 것이다.
불편해보이는 한쪽 눈의 ‘과거’를 구태여 깨묻지 않은 것도 흙과의 운명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아서였다.

 그때부터 그는 밤알만한 흙두덩이, 아니 생명의 모체 흙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어르고 달래면서 황토의 성질을 분석하고 색을 만들어 나갔다.
황토에 들어있는 석영, 장석, 운모, 방해석 등의 물질이 철분과 함께 산화작용을 받아 황색, 자색, 적색, 회색, 미녹색 등 다채로운 색깔을 띠게 한다는 이 화학적인 부분은 그 대장정의 나침반 정도에 불과했다.
그 오묘한 색, 그 속에 품고 있는 다양한 토양 내 생물, 그 흙이 머금은 태양 에너지와 미묘한 달 에너지까지 모두 다면체적인, 그야말로 보석 같은 흙이 바로 황토였다.

 그의 작업실에는 이름표처럼 달고 있는 조그만 용기들이 빼곡하다.
육안으로는 도저히 구분이 불가능한 색채의 분류를 위해 그는 돋보기를 들이댄다.
처음엔 7가지 흑색만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흙을 짓이겨 섞는 등 갖가지 조합을 통해 섬세한 차이의 명도와 채도를 구분, 하나씩 번호표를 붙이며 자신만의 자연색을 추출해냈다.
끊임없이 해체와 조합의 번거로운 과정을 반복하면서 만들어낸 색만 해도 3백 20여가지, 앞으로 2천 개 정도는 분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40년 이상 물감을 만졌지만 제 자신이 너무 부족함을 느꼈어요. 밤낮없이 흙과 씨름해도 붓질 한 번 하면 없어질 정도로 희귀한 색도 있어요.
흙색을 골라내고 그것을 물과 혼합해 화폭에 옮기는 작업은 저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깨닫는 과정입니다“
흙과 씨름을 하며 시골에 파묻힌 지 5년째, 그 동안 세상 바깥으로 한두번 나왔을까?
TV도 라디오도 없는 지독한 은둔을 하고 있다.


대학에서 당시 화단의 원로인 기라성 같은 스승을 모시고 탄탄한 기초를 닦은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사연, 그러던 그가 다시 캔버스 앞에 앉기까지의 그 곡절을 굳이 들쑤시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그가 흙으로, 땅꽃으로, 붉은 꽃으로 다시 피어났다는 사실일테니까...